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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관한 포스팅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해당 조약은 1895년에 청일전쟁을 끝낸 조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 지역 어디?
일본과 청국이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체결을 하였습니다. 이 조약은 청국이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고, 일본에 라오둥반도, 타이완, 펑후섬 등을 양도하며, 배상금 2역 냥을 지불하기로 하였습니다. 해당 조약은 일본의 동아시의 진출의 발판이 되었고, 청국의 국력 약화와 열강의 간섭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조약의 정식 명식은 일청강화조약이며, 시모노세키조약이나 마관조약으로도 불립니다. 이 조약은 조선의 국제적 지위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진행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모노세키 조약 배경
시모노세키 조약의 배경에는 19세기말 조선의 내정과 외교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나고, 조선 정보는 청국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청국과 전쟁을 벌였고, 청일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일본은 청국보다 군사적으로 우세했고,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고, 청국의 해군과 육군을 크게 파괴했습니다. 청국은 전투에서 연패하고, 국내에서도 반외세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결국 청국은 일본과의 강화회의를 요구하고, 1895년 3월 20일부터 시모노세키에서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약의 내용과 영향
시모노세키 조약은 일본의 이도 히로부미와 청국의 이홍장이 주도적으로 협상했고, 4월 17일에 조인되었습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청국은 조선의 독립을 확인하고, 조선과의 공헌, 전례 등을 폐지한다.
- 청국은 랴오둥반도 남부, 타이완 전도와 부속 도서, 펑후 열도를 일본에 영원히 할양한다.
- 청국은 군비 배상금으로 고평은 2억 냥을 일본에 지불한다.
- 청국은 일본과의 통상 항해 조약을 재협상하고, 일본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한다.
- 일본은 청국의 배상금 지불과 통상 항해 조약의 비준이 완료될 때까지 산둥성의 웨이하이웨이를 점령한다.
이 조약은 조선의 국제적 지위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은 청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지만, 일본의 간섭과 침략에 노출되었습니다. 일본은 타이완과 랴오둥반도를 획득하고,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청국은 배상금을 갚기 위해 열강에 차관을 빌리고, 영토와 이권을 분할당했습니다. 또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은 일본에게 요동반도를 청국에 반환하도록 압박했고, 일본은 삼국간섭에 굴복했습니다. 이후 일본과 러시아는 조선을 두고 대립하게 되었고,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19세기말 동아시아의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일본은 이 조약을 통해 동아시아의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립했고, 청국은 열강의 간섭과 침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은 독립국이 되었지만,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화에 맞서야 했습니다. 이 조약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상처와 영향을 남겼습니다.